난,
뱃속에서 부터 선생밥 먹고 자랐으며
내 가족의 절반이 선생이다
겨울방학이면
두어달은 족히 친정집에서
기둥뿌리를 죄뽑아야 돌아가는 언니네 하며
벼라별 핑게로 시댁 경조사 빼먹는 올케...
하여
난
선생이라면
넌덜머리가 나
서른살 밑자리 깔아
그 급한시기에도 선생하고는 선도 안봤다
허긴
그렇게 뺀질거리며
골라 골라 온게
선생보다 열배는 더한 샌님에게 걸렸지만...
동생이 호주로 떠나기전 이야기다
기안 작성엔 도 터진 국어선생 내 옵빠는
남매를 서울 고모네로 보내면서
(당근 빈손으로)
내민 일정표엔
제 1일 : 서울대공원
제 2일 : 6.3빌딩
기타등등 기타등등..
마지막란
갸들이 비행기를 한번도 못타봤으니
몇날 몇시 항공기 까지 정해서 보냈더라 이말씀
그런 오빠가 무슨이야길 했는지
몇주전
보도 듣도 못한 오빠의 절친한 친구란분에게서
전화로 작은 청탁(?)이 들어왔다
그분이 오빠에게
아주 줄을 잘 선것 같다고...
요즘 세상이 어느때라고...?
물론 말로만이라도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그분은 내 오빠 뒤에 줄선게 제일 큰 실수란걸 아실랑가?
물상선생인 애주가 내형부는
위장에 빵구가 나
독실에 입원하곤
병원밥은 냄새도 맞기싫다며
보호자는 커녕 환자밥까지 거절하고
내게 달포간 나르는 곤역을 치루게 했다
애밴사람 처럼 주문 메뉴는 또 얼마나 다양했든가..
지난주말
아들 면회길
숙소 20분 거리에 교편잡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걸거적 거리는 남푠도 없이 아들과 단둘이살아
서울에 오거나
간혹 지나는 길이며
내 힘껏 성의를 다했었다
쪼잔한 친구
몇통화로 때웠다.
방학중 휴일에도 그리 바빳을까..?
많이 쪽 팔렸다 남편보기에...
반성했다.
잘못살은것 같은 나의 반평생을....
그래도
진짜 눈코뜰새없이 바쁜 와중에도
해마다 과메기 직접 손질하여 보내주는
물가의 친구가 있고
(갸는 차칸 선생이다)
아...
이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자구나,,,할수있으며
매년 해맞이를 함께해온
백교감이 있기에
작은 위로삼으며
내곁에 있는 무수한 선생들을
다시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