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친구
두명이 미국으로 들어갔다
* 한명.
동네의 수많은 과수원집중
딸부자네 숙이는
항상 웃고다녔다.
썩
예쁜얼굴은 아닌것 같은데도
숙이의 주변엔
늘 남학생들이 들끓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이란
완벽한 여자보다는
줄듯말듯 ..
조금은 헤퍼보이는 듯한
여자를 좋아하는것 같다
동네
반반한 청년들이나
타지에서
불량 스러우면서도
멋져보이는 남학생만 왔다하면
숙이랑
염문설이 나돌았다
숙이는 우리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는것 같았다
사과를 주는지
또다른 무엇을 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자들이
눈이 높은건지
우리가 너무 멋대가리가 없었는지
도통 모를일이다
* 또 한명.
사기전집 옥이는
가랑파 같이 야들야들
청순가련형 이었다
어릴때 화상입은 흔적이
긴 목둘레를 휘감은듯 나 있었기에
옥이의 왼손은
언제나 목 언져리에 있었고
늘상 무언가 생각하는것 처럼 보여
여자인 우리가 봐도
애처로움과
연민의 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겨울 방학때면
2시간 거리의 도시였지만
나를 포함한 유학파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그간의 목마름을 토해낼 장소가 필요했다
그 즈음
황량한 벌판의 과수원은
본가로 철수해 빈집이 많았다
그러노라면
게중 만만해 보이는 과수원 하나는
우리 �이 되었고
해질무렵이면
발빠른 준이가 남몰래 군불을 지폈고
들키면 경을 칠세라
전깃불은 엄두도 못내고
숨죽여 촛불아래 모여앉았다
뛰는놈 위에 나는
울 아부지..
호랑이로 소문난 박선생님의
눈과 귀를 막기엔
역부족 이였기에
잡혀 들어올때가 허다했지만
우리 모두다 당신의 제자였고
가끔은 모르는체 해주시는
배려도 있으셨으지만
그것도 모르고
완전범죄 성공이라 외치며
히히낙낙 과수원의 밤은 깊어만갔고
촛불이 동이나면서 부터
재미는 한층 더해갔다
어둠속에서도
화제는 끝이없었고
조선 뻥이란 뻥은 다처대는
길이의 밑천이 떨어질때쯤이면
옥이의 노래시간이 이어졌다
어느 누구도
비교할수없는 타고난 음색과 기교에
숨소리도 미안할 만큼
옥이의 목소리는 청아했다
고백하건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가
너좀 빠져줄래? @#$%^&*
지금생각해도 쥐구멍에 들어가고싶다.
내 어린
학창생활의 일부가 지나간지
수해가 지난 어느날
서울에서 머물다가 잠시 낙향
친구와 대구의 동성로를 걷고있었다
딱 마주친 어느여인의 비명소리
외마디 여인은 간곳 없고
짙은 검정색의 양키가 서있다
.........???
지금도 있을래나?
동아백화점 맞은편
우동으로 유명한 그 미성당..
주문한 음식 기다리던중
슬그머니 다가앉아 아는체하는 여인
자세히 뜯어보니
조금은 변했지만 성숙해진 숙이였다
봤니?
봤지?
아.....!!
봉덕동 미군기지와
동촌 비행장에 미군이 한창 많던 시절이었기에
대충 짐작이 갔다
예나지금이나 난 좀 엉뚱하다
내게 보여진게 창피하니?
그래서 뭘?
다 니인생이야...
네게 주어진 삶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어~
이해해주어 고맙다..
번잡하든 숙이도
얌젼하든 옥이도
그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숙이엄마도
옥이엄마도
몇번씩이나 미국을 들랑날랑
양서방에게 호강받은 이야기로
자랑이 늘어지셨다며
울엄마 엄청 부러워 하셨다
아직도 모르겠는건
숙이는 그렇다 치고
옥이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내 아들
미국으로 보내면서
얘...
엄마는 많은걸 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까만 며느리는 안되느니..
사랑인
아메 인종차별주인가 보다.
울엄마
오래 살아계셨다면
혹알아?
양 손주며느리 덕에
미국 구경하셨을지도 모르셨을텐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