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서울출장을
성공리에 마치고
마크스와 축배를 들고있을 즈음
아들이 다음날 떠날것을
예측이나 하신듯
97세로 요양원에 계시던 엄니께서는
설을 닷세 남기신체
소천(召天) 하셨다.
오메불망 그리던 아들이었음에
천수(天壽)를 다하신
엄니를 떠나보내고
오열하고 있을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는 불량며눌
나 맏며눌과 장손이
너무나 멀리있는 까닦에
설이 임박하나마 4일장으로..
마크스의 지시로
항공편이 마련되어
뮌헨, 워싱턴에서 날아들어
장례 전날 저녁나절에서야 도착.
워낙이나 연로하신 엄니셨기에
언젠가는 떠나실줄 알고는 있었으나
갑작스런 부음(訃音)엔
우왕좌왕 하기마련
남자의 지인분과
상조회의 도움으로
무사히 치루게 되었음에
큰 감사 드리고 싶다.
호상이라고들 말하지만
그래도 상을 당했는데
상조회 관계자가 말했다
곡 좀 하라고...ㅠㅜ
결혼전 친한 친구들중
가장 연세가 많으셨던 울엄니
단연 내가 제일먼져 해방된민족이 될줄알았으나
삶과 죽음은 하늘의 뜻이라더니
울엄닌 최고령을 갱신하셨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블친들도 더러 있겠고
궁금사항이 많을줄로 안다
조문객?
33년간 한직장에 몸담아 있으면서
가려가며 상조금 냈었겠나?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퇴직후 였고
외국에 거주하는 상태며
더군다나
한국정서엔 명절아래 상갓집 출입은 금기사항 이랬다.
나?
남자의 전회사 분들과
중복된 분들 제외하면
여나무명 안팍,
인간성이 더러워서?
인생을 잘못살아서?
받고자 상조금 했다면
엄청 서운했겠으나
과거사야 푼돈으로 여기기로 하고
미래는 예측하기 힘든상황이니
종료후 여차저차 다녀간다는
전화몇통을 뒤로하고 떠나왔다.
어쩌면 그럴수가 있냐고들 항의했지만
어차피 품앗이 인것을...
2月 14日별세
2月 17日 발인
생신날 묻히셨으니
천수를 다하셨다고 모두들 그러데...
설날이 삼우제여서
발인일에 탈상할수밖에 없었기에
비록 둘만이지만 성의로나마
간단히 49제를 모실까한다
구순 되시던해
치매로 요양원으로 모신지가
만 7년... 5남매가 있어도
맏이인 우리만 요양비를 부담했었는데
입이 근질거려 애를 먹음서도
너만 아들이냐 소리 한번 안했던게
이제와 생각하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 내가 돈벌어 본적도 없고
아들이 벌어 저검마 돌보겠다는데 워쩌.
물론
친구들에게는 궁시렁댔지만서도
내가 부처님 중간동가리도 아니고
그말도 못하면 등신아니것나..
그나마
아들 출장도중 돌아가셔서
뱅기삯 벌어주셨고,
설아래여서 값비싼 (7백5십마넌)
비즈니스 타고가서 꽁꽁 앓았었는데
마크스가 기꺼이 부담해주어
완전 고마운 마크스는
역시 통큰
머찐 남자!
(아들과 친구들)